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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poem

(105)
시집가던 날 작은 종은 큰 종 옆에 손을 흔들며 거리에 그대로 서있다 발걸음은 돌리지 않은 채 마음은 들리지 않은 채 아래로 아래로 울리고 있다 들키지 않으려는 것도 아닌데 공중에 매달려 온데 맘껏 울려퍼지지도 않고 떠난 자리에서 그리움이 안보일 때까지 땅을 붙잡고 작은 종 그 안으로만 한참 울리고 있다
몽등(夢燈) 행선지 없는 비행기 접고 날리는 흑백밤 입 꾹 다문 티비 체온계 하나 물려주었다 아파 건드리지마 빨간불 삼십 구층까지 올라가 깜빡깜빡 부딪히면 더 아플라 흑백밤 몽등 켜둔다 꼭대기 홀로 빨갛게 꿈뻑꿈뻑 지지직 2014.12.14
연어 나를 흔들리는 바람이라 생각했는데 고개들어 바라봐 주었고 나를 물에 한 번 튀고 빠지는 물수제비 뜨기라 생각했는데 세발짝이나 멀리까지 뛰어오르게 했고 나도 빛커튼이 드리우면 거친 실루엣이 생기고 입술을 동그랗게 말아 날아다니는 휘파람을 불러내고 입가에 살랑이는 구릿빛 미소를 그대 눈가에 싣고 일렁이는 항해를 하는 사랑에 빠진 마도로스가 될 수 있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형체를 가진 인간이 되어간다고. 그런데 손에 잡을 수 없는 눈으로 볼 수 없는 들을 수 없는 나를 그렇게 알지 못하는 그때가 그리워 마음은 피고 지는게 아닐까 2014.11.09
울돌목아 어이 울며 도는 쉬이 발을 떼지 못하는 울돌목아 무슨 회한이 남아 소리로 원을 그리고 또 그리나 펼친 학의 날개짓이 예 남은 소인의 두려운 몸짓이던가 아닐세 저 가버린 당신을 향한 힘껏 나부끼는 그리움 게 그리움일세 아직도 울며 도는 그대여 내 술 한잔 받고 쉬 도세나 2014.08.15
순식간에 어깨를 내리쬐는 햇볕은 겹겹의 날개로 감싸안으며 우유빛 소년을 끌어안고 구릿빛 청년으로 이내 타들어간다 청년은 강렬한 태양아래 탱탱한 젊음을 뽐내려다 쭈글쭈글 감자 껍질같이 날개를 벗겨내고 굳은 주름의 조각상이 되었다가 햇볕 안고 말없는 흙이 된다 생각없이 단순하게 그렇게 2014.08.02
전기빛 나는 걸어가고 있다 실린더 기름 칠한 빛을 뿜어내는 차는 빛줄기를 쏴 튀기며 내 앞을 가로지른다 내 그림자는 가까워지는 벽면을 따라 뒤처지고 낮 그림자처럼 느리지 않게 저만큼 빨리 밤 가로등 높이만큼 늘어났다 짧아졌다 앞서다가 뒤처지고 머리가 커졌다 헝클어지며 사라지고 전기 빛줄기에 흔들거리는 그림자 불꽃 피우다 바쁜 낮의 고요한 그림자를 꿈꾸며 밤에 어둠에 까맣게 그렇게 뭉개 뭉개진다
다이어리와 플래너 사이 모음과 자음을 이어붙여 이 사이사이를 구석구석 꽉 찬 언어로 빈틈없이 메꾸어 뇌량을 연결짓는 일을 한다. 그는 어제 메아리 없는 미래의 무음은 오늘의 다이어리에 까맣게 빼곡히 내려앉고 또 입을 열어 가다듬고 음을 내어본다 이야기가 되고 귀에 닿고 가슴에 닿아 손에 움켜쥔다. 부메랑을 오르락 내리락 머리와 가슴을 오고가는 사이 발은 멈추었고 한량없는 수평생활에 익숙해진다. 늦은 밤 그는
홀로 남은 나무 저 나무는 왜 잎이 없지? 아마 죽었나보다 아직 서있으니까 살아있는거야 그래도 죽은거지... 흐르는 계절에 몸에 핀 마른가지는 세월에 무감각한 검버섯없는 매끈한 팔 팔이 휘두르는 지휘에 맞춰 주름진 얼굴의 나뭇잎은 까만 주검의 음표를 나르다가도 이어나갈 생명의 곡절을 한들한들 노래한다 푸른 젊음을 영접하며 죽음은 매끈하고 삶은 주름진 숲 속 서있는 매끈한 몸뚱아리를 가로로 공전하는 계절이 밑동부터 파고들어 관성이 남은 죽음을 어기여 합창하며 밀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