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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poem

(105)
네온 거리 끝자락에 내걸린 간판 네온사인에 엷어진 기억을 심었는지 아니면 낡은 생체 시계를 찼는지 생의 마지막처럼 깜빡깜빡거린다 네온사인에 구슬픈 마음까지 넣은거야? 근데 나를 왜 너의 이름으로 부르는거야? 네 이름의 의미를 아는지 그 이름을 내걸고 살아온 네 인생의 굴곡을 이야기하는지 글자의 모양을 입으로 가져가 손으로 한 자 한 자 짚어가며 마지막으로 네 이름을 간헐적으로 부른다 지나가는 내 눈길을 부여잡고 점멸하며, 깜빡깜빡 찌지직-
버스를 타고 달린 위치는 제각기 달라도 모양은 똑같은 버저를 꾹 누른다 미련 없이 내리고 싶다라고 왜냐하면 목적지는 늘 거기거든 매일매일의 모양은 달라도 여기 무심히 앞을 향한 얼굴들은 폰 불빛을 가족보다 더 가까이 마주하고선 가족처럼 말이 없다 중간에 아니면 나보다 더 멀리가서 내리는 사람의 얘기 한번 듣고 싶어 거긴 어떠냐고 근데 매일 마주치지만 말 한마디 건네지 않는 익숙한 얼굴들은 곧 사라질 영화 세트장의 연기자 같아 알아도 아는 척 하지 않기로 누구나 하는 약속을 말 없이 눈도장으로 찍었으니까 오늘은 중간에 아니면 더 멀리 가서 내려볼까 꾹 무심한 일상의 관성이 손대지 않는 다른 모양의 버저를 누를 수 있는 곳으로 덜컹덜컹
옛 추억
짝이 있다 짝이 있다 라는 이 말은 언젠가 짝 갈라 떨어져 한 쪽만 홀로 남는 상실이라는 아픔을 살짝 감추고 있 ... 아니, 잠시 쉬쉬한 외면한 진실이 드러난 장면이었지. 외로움 너 외로워서 그러니? '안녕!' 다가올 기이인 이별 앞에 한 뼘 경계선 긋고선 돌아와 거울 앞에 서면 갈라진 쪽엔 아픔이 서려 아려 아래로 흘러 흘러내리겠지 그러면 옹벽을 세우자 여기 저기 수척해진 외로움 푹 잠기도록 거울을 부수자 아픈 조각 조각 비치도록 구석 구석
생일2 - Better Together 머리에는 다시는 유행하지 않을 해를 쓰고 몸에는 꼭 맞는 달과 날을 골라서 갖추어 입지. 일곱 개 요일은 뒷주머니에 꽂고 그날의 날씨에 아마도 어울렸을 법한 노래를 틀고, 축제를 알리는 팡파르보다는 성대한 시작도 거창하게 장식할 대미도 아닌 조촐한 간주를 맡은 정겨운 하모니카 소리가 귀를 막 간지럽히고 있을 때 사이에 있지 무엇과 무엇 그 사이 앞도 뒤도 아닌 누구와 누구 그 사이 위도 아래도 아닌 사이에서 귀를 간지럽히고 있지 기타 선율과 달콤한 퍼거시브로 해와 달과 날이 가진 몇 개의 숫자가 가위바위보를 하면 정해지지 무를 수 없는 오래된 동굴 벽화가 탐험가의 랜턴에 비춰지는 그 때 삶 그 끝이 다가올 때에는 내 초상화의 머리에서 다시는 오지 않을 해를 떨쳐버리겠지 발가벗고 일곱 개 요일 중 마지막 ..
텔레파시 1. 내가 밤새 잠 못 이룬 건 커피 때문만은 아니었다 2. 커피는 당신을 잠 못 이루게 할 수조차 있는데 나는 3. 당신과 같은 생각을 할 때 서로 주파수가 맞겠지? 근데 당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나서 내 생각을 당신에게 말할라치면 다른 주파수라 금방 접속이 끊기겠지? 근데 처음부터 내가 당신과 같은 생각조차도 하기 어려운 거잖아 (아니다, 당신이 나와 같은 생각조차) 전파방해가 적은 밤조차도 당신은 잠들어 있으니 꿈 속에라도 내 마음을 전해 놓을까 (일어나면 잊어버릴텐데)
소리와 빛과 사람과 시 0. 소리는 빛의 혀에 담지 않는 글자 사람 가까이 빚지고 사는 화폐 소리 높여 부르는 게 값인 세상에서 한몫하는 사람 입에서 쉽게 오르내리는 너 0. 빛은 몸의 기관이 내지 못하는 유일한, 고귀한 색깔 1. 쉼 없이 듣고, 보고, 말하는 인간 2. 외진 곳, 빛줄기 하나 입구는 있어도 출구가 없는 건물에 들어가 한참을 헤메며 목청껏 누굴 찾아 소리를 잃은 게 아니었다 애초에 빛은 침묵하였다 돌진하는 빛줄기에 들어오면 나갈 수 없다는 한마디도 못 건낸 채 채광이 잘 드는 창가에서 애처로운 눈빛으로 깜빡인다 깜빡이는 빛은 소리라도 내는 것 처럼 오지 말라고 3. 외진 밤 빛과 소리도 없고 꿈을 꾸지 않을 때 밤은 찾아온다 등져서가 아니라 환한 대낮에도 빛을 걸어 잠그고 잠잠히 시간에 제동을 걸며 밤이 찾아..
겨울 밤 꿈에 내 기억으로는 그저께 같지만 시간은 어제로 구분짓는 자정 너머의 밤은 왠지 마법같은 시간이 머무르는 공간이다 아래층도 위층도 아닌 그 다락방 구석진 곳 까만 스피커가 잠들어 손에서 놓은 사그라들지 않고 퍼져나가는 노래를 원주민이 모닥불 주위를 맴돌듯 따라부른다 주문을 외우듯이 저 은하수 물길이 이곳을 휘둘러 거부할 수 없는 우주에 휩싸인 시간 마법이 일어날거 같은 이 시간에 아직 노랫말이 꿈같이 들리지만 그대로 이루어지길 바라면서 어제를 아마 엊그제를 일어나지 않을 일처럼 이불 속에서 들춰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