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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poem

(105)
앙금앙금 앙금앙금 기어가는 아기에게 물어본다 넌 어디에서 왔니? 여기 온지 얼마 안되었으니 거기를 알까 싶어 노인 앉은 곳 가까이 기는 아기의 재롱이 흐리게 보인다 아기 눈에 노인의 주름이 선명하게 비친다 원래 있던 곳 가장 가까운 곳에서 아기와 노인이 앉았다 일어선다 흙에 덮힌 재롱을 땅에서 캐어 내듯 팔로 끌어안고 일어서서 낙차의 아픔을 견디며 무릎을 툴툴 털어버린다 휘이 둘러 아름드리나무 아래에서 나이테가 선명하게 비친 까만 눈망울에 잎새를 살랑 드리운다 곧 겨울 넌 이제 봄 휘이 둘렀지만 우리는 마주하고 있었지 캐어 올려야만 만날 수 있었던 낙차를 지닌 계절 속에서 넌 어디서 왔니 나는 어디로 가니 아마 둘러 둘러서 마주한 아름드리나무 아래겠지 텅 빈 방 가득 채웠던 앙금앙금
쪼가리 웨이크업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보며 고운 기억의 파운데이션 어디쯤을 찍어 발라야 나처럼 보일까를 생각한다 메이크업 부팅 구겨진 일간지가 몸을 던져 험상궂은 세상을 깨우는 동안 플렛한 스마트폰 너머로 보낸 디엠, 크랍한 사진과 샵을 얹은 단문들이 하트와 맞팔로 응답하는 둥근 내 세상으로 잠시 탈옥한다 루팅 트래킹 기억의 피라미드를 머리에 거꾸로 세워 위태롭게 과거를 파헤치면서도 스핑크스처럼 영광의 마지막 흔적을 굳어버린 얼굴로 쳐들고 나인 척한다 트리킹 러닝 아침마다 눈을 뜨면 운동화 끈을 조여 매고 달려본다 나를 나로 받아들이려면 기억의 저편 어디까지 가야하는지 얼마나 메고 가야하는지 굳어버린 스핑크스를 라잉
비밀해제 욕실 양변기가 덩그러니 햇빛을 받으며 골목길에서 낯선 이방인을 마주하고 있다 달팽이처럼 집안 몸 어딘가에 처박아놓고 한평생 들락거리며 울러메고 사는가 싶더니 리모델링을 한다며 길가에 나뒹굴고 있다 더럽다고 박박 문질러 하얗게 질린 얼굴엔 백열전구에는 감춰졌던 얼룩들이 하나둘 꺼꿀잡이로 뒤집어 걸어놓은 하얀 속옷마냥 까발려져 햇빛에 욕보이고 있다 평생 씻기지 않는 오명을 사인처럼 건네며
젊음은 가더라도 이 사랑만큼은 심장이 포위당한 듯 조여온다 빨라진 고동 소리는 그대에게 가는 내 발걸음 소중한 걸 잃을 것처럼 찰칵찰칵 움켜쥔다 외로운 암실에서 셀 수 없이 현상한 그대 모습이 판막을 밀어내고 온몸으로 퍼져 따스하게 스며든다 그대가 내가 되는 순간이다 세상을 그대와 내가 함께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순간이다 그대 그림자만 내게 다가왔다 하더라도
달이 두 개 뜨는 세상 2 생명은 화촉을 밝히듯 아름다운 두 선을 잇는 접점에서 피어난다 죽음은 촛농으로 침전하며 소실점에 그저 홀로 숨어버린다 저 멀리서 별똥별은 시력을 잃기 전에 어두운 밤 한가운데 일자 광선을 그으며 응시한다 마지막 시선이 닿으려는 그 선을 따라 가면 하늘을 올려다보는 연인 입맞춤, 그리고 깍지 낀 아름다운 두 손의 결정(結晶) 그리던, 떠올리며, 맞닿으려는 눈은 감기고 어두운 밤 한가운데 감춰진 길로 기척없이 걸어가며 문을 닫고, 불을 끈다 처음으로 입을 열어 두 개의 크고 작은 따옴표를 숨결에 조심히 머금고 인사를 나누던 놀이터 미끄럼틀 맞잡은 두 손을 비추던 말 없는 두 개의 달 함께 뜨지만 홀로 지는 돌고 도는 흔한 동네 한바퀴 난 여기 있어요 쿵쿵쿵 그래요 난 여기 있었어요
루이스 기도가 있다면 지금 여기 있는 내게 말했을거야 기도는 방향이 없거든 지금 여기서는 미래에 내가 한 기도를 들었다고 하겠지만 그것도 아냐 막을 수 없어 한 쪽으로만 흐르지 않거든 기도가 있다면 처음과 끝이 내게는 무의미해 HANNAH
달이 두 개 뜨는 세상 1 달이 두 개 뜨는 세상 나만 달이 두 개로 보일까봐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지 못하지 달이 두 개 뜨는 세상 달이 두 개인 게 문제가 아니지 물어보지 못하는 나와 그걸 이상하게 보는 세상이 문제인거지 달이 두 개 뜨는 세상 나만 그 세상에 있다한들 어때 나는 두 개로 보네 새로운 세상에 적응해 각자만의 길에 진입하는게 한 생명이 가는 길인데 그걸 이상하게 보는 세상이 문제인거지
칼을 잡는다 칼을 잡는다 감정이 가라앉기도 전에 꼭 칼을 잡고 썬다 먹을 것을 배에 넣으려고 머리는 여전히 잔뜩 흐리고 먹구름만 마구 썰고 있는데 아차, 베여 빨간 피가 흐른다 감정의 색이 뭔지 말하듯 체호프의 총처럼 칼을 잡는다 감정이 가라앉기도 전에 꼭 칼을 잡고 썬다 더욱 야무지게 먹을 것을 배에 넣으려고 웅크린, 등을 보이며 감정의 모양이 뭔지 말하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