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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두 개 뜨는 세상 1 달이 두 개 뜨는 세상 나만 달이 두 개로 보일까봐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지 못하지 달이 두 개 뜨는 세상 달이 두 개인 게 문제가 아니지 물어보지 못하는 나와 그걸 이상하게 보는 세상이 문제인거지 달이 두 개 뜨는 세상 나만 그 세상에 있다한들 어때 나는 두 개로 보네 새로운 세상에 적응해 각자만의 길에 진입하는게 한 생명이 가는 길인데 그걸 이상하게 보는 세상이 문제인거지
칼을 잡는다 칼을 잡는다 감정이 가라앉기도 전에 꼭 칼을 잡고 썬다 먹을 것을 배에 넣으려고 머리는 여전히 잔뜩 흐리고 먹구름만 마구 썰고 있는데 아차, 베여 빨간 피가 흐른다 감정의 색이 뭔지 말하듯 체호프의 총처럼 칼을 잡는다 감정이 가라앉기도 전에 꼭 칼을 잡고 썬다 더욱 야무지게 먹을 것을 배에 넣으려고 웅크린, 등을 보이며 감정의 모양이 뭔지 말하듯
네온 거리 끝자락에 내걸린 간판 네온사인에 엷어진 기억을 심었는지 아니면 낡은 생체 시계를 찼는지 생의 마지막처럼 깜빡깜빡거린다 네온사인에 구슬픈 마음까지 넣은거야? 근데 나를 왜 너의 이름으로 부르는거야? 네 이름의 의미를 아는지 그 이름을 내걸고 살아온 네 인생의 굴곡을 이야기하는지 글자의 모양을 입으로 가져가 손으로 한 자 한 자 짚어가며 마지막으로 네 이름을 간헐적으로 부른다 지나가는 내 눈길을 부여잡고 점멸하며, 깜빡깜빡 찌지직-
버스를 타고 달린 위치는 제각기 달라도 모양은 똑같은 버저를 꾹 누른다 미련 없이 내리고 싶다라고 왜냐하면 목적지는 늘 거기거든 매일매일의 모양은 달라도 여기 무심히 앞을 향한 얼굴들은 폰 불빛을 가족보다 더 가까이 마주하고선 가족처럼 말이 없다 중간에 아니면 나보다 더 멀리가서 내리는 사람의 얘기 한번 듣고 싶어 거긴 어떠냐고 근데 매일 마주치지만 말 한마디 건네지 않는 익숙한 얼굴들은 곧 사라질 영화 세트장의 연기자 같아 알아도 아는 척 하지 않기로 누구나 하는 약속을 말 없이 눈도장으로 찍었으니까 오늘은 중간에 아니면 더 멀리 가서 내려볼까 꾹 무심한 일상의 관성이 손대지 않는 다른 모양의 버저를 누를 수 있는 곳으로 덜컹덜컹
옛 추억
짝이 있다 짝이 있다 라는 이 말은 언젠가 짝 갈라 떨어져 한 쪽만 홀로 남는 상실이라는 아픔을 살짝 감추고 있 ... 아니, 잠시 쉬쉬한 외면한 진실이 드러난 장면이었지. 외로움 너 외로워서 그러니? '안녕!' 다가올 기이인 이별 앞에 한 뼘 경계선 긋고선 돌아와 거울 앞에 서면 갈라진 쪽엔 아픔이 서려 아려 아래로 흘러 흘러내리겠지 그러면 옹벽을 세우자 여기 저기 수척해진 외로움 푹 잠기도록 거울을 부수자 아픈 조각 조각 비치도록 구석 구석
생일2 - Better Together 머리에는 다시는 유행하지 않을 해를 쓰고 몸에는 꼭 맞는 달과 날을 골라서 갖추어 입지. 일곱 개 요일은 뒷주머니에 꽂고 그날의 날씨에 아마도 어울렸을 법한 노래를 틀고, 축제를 알리는 팡파르보다는 성대한 시작도 거창하게 장식할 대미도 아닌 조촐한 간주를 맡은 정겨운 하모니카 소리가 귀를 막 간지럽히고 있을 때 사이에 있지 무엇과 무엇 그 사이 앞도 뒤도 아닌 누구와 누구 그 사이 위도 아래도 아닌 사이에서 귀를 간지럽히고 있지 기타 선율과 달콤한 퍼거시브로 해와 달과 날이 가진 몇 개의 숫자가 가위바위보를 하면 정해지지 무를 수 없는 오래된 동굴 벽화가 탐험가의 랜턴에 비춰지는 그 때 삶 그 끝이 다가올 때에는 내 초상화의 머리에서 다시는 오지 않을 해를 떨쳐버리겠지 발가벗고 일곱 개 요일 중 마지막 ..
텔레파시 1. 내가 밤새 잠 못 이룬 건 커피 때문만은 아니었다 2. 커피는 당신을 잠 못 이루게 할 수조차 있는데 나는 3. 당신과 같은 생각을 할 때 서로 주파수가 맞겠지? 근데 당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나서 내 생각을 당신에게 말할라치면 다른 주파수라 금방 접속이 끊기겠지? 근데 처음부터 내가 당신과 같은 생각조차도 하기 어려운 거잖아 (아니다, 당신이 나와 같은 생각조차) 전파방해가 적은 밤조차도 당신은 잠들어 있으니 꿈 속에라도 내 마음을 전해 놓을까 (일어나면 잊어버릴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