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my poem

나무인생

 

뿌리 한 끝자락에서의 시작

그 출발은 실눈 뜨고도 어디인지 가늠하기 쉬웠다

아직 빛이 없었기에 뿌리 한 자락 부여잡고

따뜻한 어둠 속 거기 웅크려 울고 있었다

 

나무는 보기에 심히 아름다웠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내 잠시 지나온 저편의 날들은

지금의 나에게로 오는 유일한 한 줄기 뿌리의 운명이었다

이제 빛이 있기에 나에게는 벌려진 틈이 길이 되고

나는 까맣게 흔들리고 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땅 위 높은 곳 붉은 열매도 보이고

푸른 잎사귀도 보이고

바로 코앞에 마냥 듬직한

굵고 넓은 나무 줄기도 보인다

 

오가는 여린 열과 뜨거운 열병 속에

성숙한 나이테를 티 내며 소매 없는 시린 설국을 맞서보기도 한다

그리고 어렴풋이 보이는 가는 가지에 달려 있는

영근 열매와 푸른 잎을 꿈꾸며

미래의 나의 길로 가는

널려있는 가지 줄기에 목을 한껏 높이 치어든다

 

계절 위에 낯선 밤낮 손님들이 왕왕 찾아들면

엷은 가지에 이루었던 익은 꿈들은

별똥별 같은 낙하를 내주기도 하고

수줍은 애기의 볼을 살포시 내보이며

뿌듯해 하기도 한다

 

수평으로 흐르는 계절 위에

수직으로 솟구쳤다 첨벙 떨어져

다시 흐르는 내 마음과 남아 맴도는 너의 마음도 있기에

이 나무의 계절 심히 좋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