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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 - 고은

허공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고은 (창비,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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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다른 문학 장르보다 짧고 간결한 단어와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어
쉽게 빨리 읽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인이 하나하나의 시를 정성들여 오랜시간의 통찰, 생각과 감정의 정리 끝에 지었기에
그 시인이 시를 지어나간 속도에 비해 아주 빠른 속도로 읽어내려간다는 것은 큰 죄를 짓는 것 같은 느낌을 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시 하나하나가 서로 연결된 의미고리를 지닐 수도 있지만
시 하나하나가 독립된 작품이기에 광고 보듯이 재빨리 하나를 보고 다른 하나로 넘어가기에는 너무나 이해하기에 벅찬 힘듦이 시 하나하나에 존재하고 있다.
대신 그 시들을 곱씹어 그 죄에 대한 감정을 상쇄시키려는 작업을 수행해나가야하리..


허공이라는 시집은 시인 고은이 겪은 세월과 생각들의 정리가 담겨 있었고,
이승, 저승의 경계에서의 시선들과 돌고 돌며 너가 내가 되고 내가 너가 되어 기존의 경계를 허물고 초월하는 곳에서 삶과 세상을 보려는 시선이 담겨있는 것 같다. 그리고 세상 돌아가는 것과 지위가 낮고 연약한 자들에 대한 염려와 걱정도 묻어나 있는 것 같다.

기존의 풍경을 새롭게 느껴지게 만든 시가 하나 있었는데 '풍경 울다'라는 시이다.
이 시 중에서도 '제법 둘이 하나 되고 하나가 둘이 되어 와 있군' 이라는 부분이 새롭게 느껴지게 만든 부분인데 어린 이파리로 만든 차 한잔에서, 그리고 시적 화자 자신에게서 둘이 하나 되고 하나가 둘이 되어 와 있다라고도 생각할 수도 있는데 풍경 소리 또한 둘이 하나가 되고 하나가 둘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참 새롭게 다가왔다. 둘 이상의 존재를 이렇게 조화롭게 생각할 수 있는 그 시선이 좋았다.

그리고 다른 시도 좋은 시들이 있지만 내가 잘 이해를 하지 못했다. 그 중에서 '라싸에서'라는 시에서 시인 자신을 좋은 시를 짓기 위해 말씀의 귀신들에게 구걸하는 거지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러한 처지를 운명으로 여기고 그리 표현하며 낮은 자의 시선에 머무르려는 시인의 모습이 나에게는 낯설지만 재미있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