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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노예 '아낌'

'아껴' 돈을 모으는 것과 '필요'한 만큼만 사용하는 것은 같은 것 같지만 그 밑바탕이 되는 사고방식이 다르다. 우리는 늘상 사치하지 않고 자기 분수에 맞게 소비하는 미덕을 추앙하였다. 심지어 검소한 태도에 감탄하고 본받기를 강요받기까지도 한다. 하지만 이런 '절약'의 사고를 하는 사람도 '사치'를 일삼는 사람과 '동일'하게 '돈의 노예'가 되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여기서 또 한가지 드는 의문점이 돈이 과연 쌓아놓을 수 있는 축적물의 일종인가라는 것이다. 나이 지긋한 노신사가 일하지 않고도 외제차를 끌고 다니며 무한한 쇼핑욕을 과시하는 것은 은행 전산에 찍혀있는 숫자에 의존하여 나타나는 행동이다. 물론 나이가 들기 전에 '시간'과 '노동'에 대한 반대급부로 받은 결과물로써 돈을 받았고 그 돈을 소비하지 않아 그 숫자가 늘어난 것이겠지만 과연 오직 순수한 노동의 대가만으로 얻은 결과물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렇게 말하기에는 부적합 할 수도 있고 돈이라는 허상의 숫자를 쌓아놓고 - 돈의 축적이 사회적 합의에 기반하였다고 하더라도 필요 이상의 돈이며 - 살아가는 것이  다른 사람의 기초적인 생계를 위한 생활수준까지 위협한다는 것은 깡그리 무시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점에 도달하게 된다. 여기서 부의 축적을 위한 아낌에는 인간의 '필요 이상'의 끈임없는 욕구에 대한 인지를 말해주며 이런한 욕구를 가진 사람들이 모인 세상에서 자기몫을 축적해서 확보해두려는 보험적인 측면과 나이에 따른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후보장이라는 측면이 반영되어 있다. 이 모든 것은 모두 썩지않는 허상의 돈을 쌓아둘 수 있다는 필수 불가결한 것처럼 보이는 이상한 논리에 기반하고 있으며 그 기저에는 인간의 끊임없는 물질에 대한 욕망이 자리잡고 있다. 바로 이때문에 돈 앞에 노예가 되어 타인의 삶을 배타적으로 배격하게 되고 극심한 빈부격차를 낳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돈을 아끼는 돈의 노예가 되기보다 살면서 내가 필요로 하는 만큼이 얼마정도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고 그만큼만 가지고 나머지는 서로 나누어 쓸 수 있는 용단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래야만 하는 이상에 비해 욕망이 넘치는 사람들로 넘쳐나 그들을 방어해야하며 아끼며 필요이상으로 허상의 숫자를 쌓아놓아야 한다. 바로 서로에 대한 신뢰보다는 욕망에 기반한 비교를 통한 부러움과 도태에 대한 두려움으로 아끼며 돈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